기업거버넌스포럼 포럼논평 ㅣ 포럼의 논평을 게재합니다.

[포럼 논평] 자사주는 경영권 방어 수단이 아니다. (2024-02-21)

2024-02-21
조회수 1081


거래소나 외국인 투자자는 자사주 불인정


지난 1.30 일 금융위원회는 논란의 자기주식(자사주) 관련 제도 개선을 발표했다. 개선안은 소위 ‘자사주 마법’, 즉 인적분할시 자사주에 대한 신주 배정을 금지하는 방안을 포함하고 있었지만, 제3자 임의 처분이나 과다한 자사주 보유 등 더 중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공시 강화에 그침으로써 직접 규제를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상장회사들의 자사주 보유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전경련 2023 년 5 월 조사에 따르면 코스피 상장사들은 평균 4.4%의 자사주를 보유, 매출 상위 100 개 기업은 평균 5.0%라고 한다. 무려 30% 이상의 자사주를 보유한 회사도 많다. 지배주주의 지분보다 덤이 더 많은 격이다.


자사주는 거버넌스 중 법과 회계의 불일치 보여주는 독특한 케이스

자사주는 우리나라 기업 거버넌스에 관한 거의 모든 문제가 얽혀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만큼 복잡하다. 한국 기업과 자본시장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무시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대표적 사례이다. 높은 수익성에도 불구한 단지 0.8 배 PBR 에 거래되는 금호석유화학은 지난 2.15 일 경영권 분쟁이 재점화되었다 (시총에서 자사주 제외시 0.7 배). 가족 간 분쟁의 발단은 주주환원에 마땅히 사용되었어야 할 발행 주식의 18% 자사주를 일반주주 이익을 침해하면서 그동안 경영권 방어에 사용했기 때문이다. 법과 회계의 불일치, 경영권 방어 필요성과 수단의 적절성, 거수기 이사회, 시총 과대평가, M&A 의 순기능과 역기능 등 자사주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순간 왠만한 전문성이 없으면 손도 대지 못할 경영학, 법학, 경제학의 난제들이 정신없이 튀어나온다.


선진국은 자사주 취득 = 소각 공식 적용

선진국에서는 자사주 매입과 동시에 소각하므로 자사주라는 계정이 재무상태표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 본사가 위치한 워싱턴주는 자사주 보유가 불법이다. 회사들은 취득 즉시 소각해야 한다. 2023 년 무려 27 조원 자사주 매입과 동시에 소각한 메타는 자기자본에 자사주라는 계정이 없다 (아래 표 참조). 선진국에서는 소각없는 자사주 매입은 이사회 통과가 불가능하다. 오히려 자사주 소각으로 상장주식수 계속 감소해 주주가치가 올라간다. 



거래소와 외국투자자들은 소각없는 한국 자사주 매입 불인정

한국에서 경영권 방어 등 편법적으로 취득한 자사주에 대해 연기금, 초대형펀드 등 외국인투자자들이 이를 어떻게 주당지표에 반영하는지 포럼이 간단한 서베이를 했는데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80% 이상의 외국인투자자는 회사 현금으로 자사주를 취득했음에도 불구하고 소각이 없는 경우 이를 시총이나 주주가치에 반영하지 않았다. 한국 투자 경험이 많은 외국투자자일수록 자사주에 냉소적이었다. 어느 미국 대형 뮤추얼펀드 매니저는 “한국의 자사주는 시장에 매각되는 경우 많고 소각하는 경우도 드물어, 시총이나 상장주식수를 감소시키지 않는다”. 세계에서 영향력 많은 국부펀드 담당자 역시 “한국의 자사주는 소각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서 주당지표에 반영하지 않는다”.  한국거래소도 자사주 취득시 시총을 그 만큼 축소 반영하지 않는다.


회사 돈이 특정 주주의 경영권 방어에 사용된다면 불법이다

한국거래소나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을 인정하지 않는데 왜 우리 기업들은 수조원씩 자사주 매입에 투자할까? 한국 기업의 자사주 문제들은 대부분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에만 특이하게 있는 것이어서 외국의 이론과 사례로 해결하기 어렵다.

다만 한 가지 쉽고 확실한 것이 있으니, 자사주는 바로 ‘회사 돈’이 들어간 것이라는 사실이다. 회사 돈이 들어간 어떤 것을 – 그게 자본 차감이든 자산 취득이든 - 특정 주주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쓴다면 불법이다. 이것 하나만은 전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예외 없이 공통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사주를 활용한 경영권 방어 필요성 주장은 끊이지 않고 나온다. 실체가 없는 경영권이라는 개념을 걷어내면, 그 주장의 근저에는 ‘현재의 지배주주가 경영하는 것이 회사의 이익’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한 마디로 이것은, “현재의 지배주주가 경영할 수 있도록 그 지분에 (회사 돈으로 샀지만) 자사주의 ‘덤’을 달라.”는 주장과 같다.


법원이 자사주를 회사의 자산으로 간주하는 판결 내림

우리 정부와 법원은 1997 년 IMF 외환위기와 2008 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지배주주에게 이러한 ‘덤’을 허용해 왔다. 법원은 자사주를 회사의 다른 자산과 똑같이 처분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려 왔고, 2010 년 대법원이 같은 법리를 전제로한 판결을 했다. 그러자 정부는 2011 년 상법을 개정하여 자사주 처분시 신주 발행시와 같은 일반주주 보호 절차를 생략했다.

이러한 정부와 법원의 정책에는 일종의 두려움이 깔려 있었다고 생각한다. IMF 직후인 1999 년, 준비 없이 완전 개방된 주식시장에 대규모 외국 자본이 들어와 자본주의 역사가 오래된 선진국과 같은 원칙적인 기업 거버넌스를 주장했을 때, 그리고 2008 년 리먼 사태 당시 글로벌 시장경제 체제의 붕괴가 우려되었을 때, 규모가 작고 개방성이 높은 우리 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우리 기업의 지배주주들에게 어느 정도의 ‘당부’를 하는 손짓으로 이러한 ‘덤’을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2024 년이 된 지금, 대한민국은 개발도상국이 아니다. 2008 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도 이미 주식시장을 통한 눈에 띄는 외국 자본의 공격은 없었다. 지금 우리 경제와 자본시장의 규모는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대등한 당사자로서 경쟁과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누구나 알고 있다.


한국 기업들 온실에서 벗어나자! 자사주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불허해야

한편 지난 25 년 동안 한국 대기업은 대부분 지주회사로 전환하였고, 지배주주들은 지주회사에 대해서 평균 40% 넘는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비지주회사를 포함한 그룹 전체에 대한 평균 내부 지분율은 이미 60%를 넘었다 (2022 년 60.2%, 2023 년 61.6%. 이상 공정거래위원회 2023. 12. 18. 발표 자료). 이런 현실에서 더 이상 우리 기업을 온실속 에 넣어 두어서는 안된다. 이 정도의 높은 지분율이라면 누구나 현실에 안주하고 독단에 빠지기 쉽다. 오히려 기업이 활력을 유지하기 위해 지분 경쟁을 촉진시켜야 하는 구조와 상황인데, 회사 돈으로 취득한 ‘덤’을 추가로 인정해야 할 필요성은 전혀 없다.


경쟁이 없는 시장은 실패한다

일본은 잃어버린 30 년 동안 금융기관의 지배와 대기업 간의 상호주 보유로 정체된 기업과 경제를 살리는데 10 년 이상이 걸렸다. 일본은 기업 거버넌스 개혁으로 이제야 오랜 노력이 결실을 보고 있다. 우리 정부는 평균 4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하고 지주회사와 순환출자를 통해 그룹을 통제하고 있는 지배주주들에게 회사 돈을 이용한 ‘덤’을 계속 허용할 것인가? 경쟁이 없는 시장은 반드시 실패한다. 정부는 반드시 일반주주 이익을 침해하며 회사 돈으로 만든 자사주의 온실을 걷어 내고, 기업의 가치를 더 높게 보는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일반주주의 지지를 얻어 회사를 경영할 수 있다는 강력한 신호를 시장에 주길 바란다.



2024. 2. 21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 이 남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