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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논평] 대한민국,시장경제의 “말”이통하지 않는 나라가 되고 있다. 진정 「거버넌스 갈라파고스」가 될 것인가? (2024-02-06)

2024-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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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에 대한 서울중앙지방법원의 1심 판결에 부쳐


지난 2월 5일, 2015년에 있었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 관련하여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 등에 대한 자본시장법 위반, 외부감사법 위반 및 업무상 배임 혐의에 대해 전부 무죄 판결이 선고되었다.

이 사건의 최종적인 결론은 항소심과 상고심을 통해 확정될 것으로 보이지만, 이번 판결에 대해서 왜 해외 언론이 “놀라운 판결(surprise ruling)”, “법 체계에 대한 의문(questions about legal system)”이라고 이례적으로 평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New York Times, CNN 등 2024. 2. 5.자 기사).

이번 사건의 쟁점 세 가지는 모두 중요한 경제·사법 제도에 관한 것으로서 법원의 판결은 이미 선진국 반열에 든 한국의 경제와 기업,그리고 자본시장에 관한 법과 제도가 다른 선진국들과 너무나 다르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첫째,자본시장법 위반의 쟁점은 주식시장에서 주가에 영향을 주는 행위에 관한 것이다. 수많은 일반주주가 참여하는 주식시장에서 특히 당사자나 이해관계자의 말과 행동은 대단히 중요한 영향력을 갖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자본시장법과 법원은 그 중요성을 가볍게 여겨 허위성이나 고의를 너무 까다롭게 인정해 왔다. 이번 판결도 그 연장선 상에 있다고 생각된다.

지난 2018년 테슬라의 CEO이자 이사회 의장인 일론 머스크는 트위터에 “Am considering taking Tesla private at $420. Funding secured. (420달러에 테슬라 상장폐지 고려 중.자금은 확보됨)”라는 짧은 한 마디를 트위터에 올렸다가 증권 관련 사기 혐의로 기소된 후 벌금 2천만 달러 (약 260억 원)를 내고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났으며 집단소송으로 주주들에게 4천만 달러 (약 520억 원) 이상을 배상하기도 했다. 이번 판결과는 너무나 대조되는 결과다.

이번 판결은 주식시장의 가격에 영향을 주려는 행위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 한국의 법이 대단히 관대하다는 사실을 전세계에 알렸다 .이런 시장에 어떤 해외 장기 투자자가 믿고 들어올 것인지 심히 우려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뛰고 있는 정부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걱정이 깊어진다.


둘째, 외부감사법 위반의 쟁점은 시장경제의 기초 중에 기초라고 할 수 있는 회계에 관한 것이다. 회계에 있어서는 약간의 부정에 대한 의심도 치명적이다.

항소심에서 더욱 치열한 공방이 있겠지만, 이번 재판에서 회계에 관한 중요 자료가 대규모로 은닉된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위법 수집증거라는 이유로 증거로 채택되지 않은 점은 대단히 안타깝다. 구체적인 수사 과정을 알 수는 없으나 이는 경제 및 기업 범죄에 있어서 우리나라 법제의 허점을 여실히 드러냈다고 생각된다.

우리나라는 민사소송에 있어서 디스커버리 (당사자가 관련 증거를 모두 공개해야 하는 의무)제도도 없어 불법을 밝히려는 소송 당사자들이 증거를 취득하기 위해 사실상 형사 사건에 의존해야 하는 나라다. 특히 회사가 대부분의 증거를 갖고 있는 기업 관련 사건에서 주주가 대표소송이나 집단소송을 진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한 상황에서 거대 기업의 경제 범죄도 이렇게 제대로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지 않는다면, 외국 투자자의 시각에서는디스커버리 제도도 없는 우리 법제에서 과연 어떤 방법으로 기업 범죄를 밝혀낼 수 있을지 커다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기업 관련 소송에 있어서 디스커버리 제도의 도입을 강력히 추진할 것을 촉구한다 .이미 한국 기업들이 외국 회사와의 분쟁에서 증거를 인멸하다가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지불한 사례가 많다. 모두 국제적 법제와 기준을 모르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셋째, 업무상 배임에 대해서는 재판부가 주주에 대한 이사의 의무를 명시적으로 부정하였다. 이는 현행 우리 상법 해석 상 다수의 견해와 같은 것으로서 현행법을 보수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1심 법원으로서는 불가피한 결론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외국투자자의 시각에서는 이 점이 가장 당혹스러울 것이다. 당시 합병에 의한 주주의 손해는 합병 당시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가 합병에 반대하면서 낸 심층 보고서는 물론, 불과6개월 전인 2023년 6월 ISDS 국제중재 판정에서도 인정되었다. 심지어는 한국 대법원의 다른 사건에서도 그 사실관계가 인정되었는데 (주식매수가격결정에 관한 대법원 2022. 4. 14.자 2016마5394 결정), 왜 이번 판결에서 이사를 비롯한 회사의 어떤 사람도 그 손해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온 것인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회사의 이사회가 전체 주주에 대해서 충실의무를 부담하는 것이 당연한 외국 투자자의 시각에서 보면, 그렇다면 회사에 투자한 주주가 합병으로 인해 입은 손해는 누가 책임지고 보호하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외신에서 지적한 “법 체계에 대한 의문”도 바로 이 점에서 가장 클 것이라고 생각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가장 첫 걸음은 투자자, 즉 주주에 대해서 회사의 누군가가 의무를 갖고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사회가 되었든, 지배주주가 되었든 분명한 책임의 주체가 있어야 한다. 특히 장기적인 외국 투자자는 회사의 최고 의사결정자가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나 보호의무가 있다는 전제 하에서만 한국 회사의 거버넌스를 신뢰하고 투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판결에 의하면 결국 주주에 대해서는 아무도 의무를 부담하지 않고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회사에 대한 의무를 통해 간접적으로 주주에 대해서 책임을 진다는 이론적 주장도 있으나, 주주의 손해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게 되는 이 사건은 그러한 주장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번 판결은 왜 상법에 ‘이사의 주주에 대한 선관의무, 충실의무를 명시하는 규정을 두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번 판결의 세 가지 쟁점은 모두 기업과 자본시장에 관한 대한민국의 법제가 다른 선진국들과 너무나 다르다는 점을 확연히 드러냈다.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확실히, 그리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해소하고자 한다면, 이렇게 다른 나라와 “말”이 다른 법과 제도부터 빠르게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뜯어 고쳐야 한다.

‘한국은 다르다’는 말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할 수록 한국은 글로벌 시장경제와 자본시장에서 갈라파고스와 같이 동떨어지고 뒤떨어진 시장으로 남게 될 것이다.


2024. 2. 6.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 이남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