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활동

본 포럼은 험로가 예상되는 미래의 그 첫발을 내딛고자 합니다.

기업거버넌스포럼 회원활동 ㅣ 포럼 회원 활동 모음입니다.

[칼럼] 마천루의 저주 (이남우 회장)

사무국
2024-12-16
조회수 128








월가에 “신사옥의 저주” “마천루의 저주”란 말이 있다. 기업가치 제고에 전력을 기울여야 하는 경영진이 호화로운 사옥을 지으면 경계해야 한다는 얘기다. 아무래도 집중력이 떨어지고 전사적으로 힘이 분산되기 때문이다.

 

마천루의 저주란 역사적으로 초고층 빌딩의 건설 열풍은 경제 위기를 예고한다는 일종의 경험적 가설이다. 한국 재계 역사를 봐도 과도한 사옥이나 본업과 무관한 부동산, 골프장, 호텔을 매수하기 시작하면 기업이 망가지는 경우가 많았다.

 

기업 규모가 커지면 사옥이 필요하고 사옥을 소유하면 장점도 많다. 직원들이 자부심을 갖게 되고 공간을 잘 활용하면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해지며 생산성도 올라간다.

 

하지만 외화내빈을 경계해야 한다. 국내 최고의 랜드마크이자 그룹 상징인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제공한 롯데그룹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신용위기에 처한 롯데케미칼의 신용 보강을 목적으로 123층 마천루를 은행권에 담보로 잡힌 것이다. 국내언론은 롯데지주, 롯데케미칼, 호텔롯데의 차입금이 30조 원에 달한다고 전한다. 롯데월드타워는 건축비만 4.2조 원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고 신격호 명예회장의 평생 마지막 숙원사업이었지만, 롯데월드타워 사업 승인, 건축과 관리에 그룹 역량이 집중하다보니 유통에서 온라인의 흐름을 놓쳤고 유화에서 중국의 물량공세에 속수무책이었다. 지난 10년간 롯데지주 주가는 70% 하락, 롯데쇼핑과 롯데케미칼 주가도 각각 78%, 60% 빠졌다. 주주들은 대규모 손실을 보았는데 2세인 신동빈 회장은 사과는커녕 경영 실패의 책임을 임직원에 돌리며 최근 인사에서 최고경영자 21명 교체, 임원 규모를 13% 축소했다. 신 회장의 경영 능력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높은 가운데 장남인 신유열 전무를 3년 연속 승진시켜, 신 전무는 이번에 부사장이 되었다. 롯데그룹의 거버넌스 리스크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큰 사옥을 짓고 세를 과시하다 몇 년 후 망하거나 쇠퇴의 길을 걷는 경우가 많았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자금난으로 JP 모건에 팔린 베어스턴스도 2002년 3000억 원 이상이 소요된 맨해튼의 신사옥에 입주해 잠시 세를 과시했다. 구글과의 경쟁에서 밀려 2017년 버라이즌에 매각된 야후도 유사한 케이스다. 침체된 회사 분위기를 일신하고자 실리콘밸리의 노른자 땅 위에 사옥을 지었지만 사세는 계속 기울어 입주 후 6년 만에 회사를 매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용산에 있는 아모레퍼시픽 사옥은 영국의 세계적인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작품이다. 아모레퍼시픽 사옥을 방문하면 건물의 아름다움과 개방성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3년간 5200억 원이 투자되었는데 이는 자기자본의 20%에 해당하는 매우 큰 금액이었다. 초심을 잃은 탓인지 용산 신사옥 프로젝트는 아모레 경영 성과의 변곡점이었다.

 

신사옥과 관련해 국내에서 가장 큰 해프닝은 2014년 서울 삼성동에서 있었다. 현대차그룹이 신사옥 글로벌 비즈니스센터(GBC) 건립을 위해 10조 6000억 원에 한국전력 부지를 매입하기로 한 것이다. 감정가 3조 3000억 원 대비 217%의 프리미엄에, 두 번째로 높은 가격을 제시한 삼성전자 입찰가의 2배에 달하는 금액이라고 했다. 부지 매입 발표 이튿날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의 주가는 각각 8~9% 하락했다. 기존의 105층을 50~70층 건물 2~3개로 바꾸는 변경안은 실리를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환영할 수 있지만 중국, 미국과 전기차와 자율주행 경쟁에 집중해야 할 현대차그룹이 금융비용 포함 20조 원 이상이 투입된 상업용건물 프로젝트에 발목이 잡히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남우 회장(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객원교수)




원문링크 : 마천루의 저주 - 법률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