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논평] BYC와 코리아 디스카운트


BYC는 일반 국민들에게도 매우 친숙한, 속옷, 내의로 유명한 의류 전문기업입니다. 1946년 창업해서 역사가 76년이나 되고, 1975년 상장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중견기업 가운데 하나입니다.


국내 최초로 백양 메리야스라는 속옷 브랜드를 런칭해 오랜 기간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중견기업 BYC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독립 자산운용사인 트러스톤자산운용과 분쟁을 겪고 있습니다.


트러스톤 측은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BYC에서 광범위한 부당 내부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판단하에 이사회 의사록을 열람했고, 그 결과 대부분의 내부거래가 이사회 사전승인 등 적법한 절차없이 진행됐음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트러스톤이 확인한 BYC 내부거래는 대주주 일가 특수관계기업들과의 의류제품 제조, 판매 계약건 및 BYC 본사 사옥 관리용역 계약건 등입니다.  트러스톤은 해당 거래가 회사 이익에 어떤 불이익을 주었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회계장부 열람을 추가로 요청했다고 밝혔습니다.


BYC는 어떤 기업이고, 왜 행동주의 펀드의 타겟이 되었는가?

사단법인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중견기업 BYC의 사례를 통해 우리 기업 거버넌스의 문제를 진단해보고자 합니다.


첫째. 터무니없는 저평가입니다. BYC는 6,800억 규모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데(2021년 말 기준), 이 가운데 투자부동산만 4,800억원 가량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BYC는 1983년 이후 한번도 자산재평가를 실시하지 않아 투자 부동산 대부분이 장부가로 잡혀 있습니다. 이를 공시지가 기준으로 계산하면 9천억원이 넘습니다. 업계나 소액주주측에서는 보유 부동산의 실제 자산가치가 최소 1조원, 많게는 2조원을 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BYC의 현재 시가총액은 2,300억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극단적인 저평가가 지속되어 왔다는 사실 자체로, 우리나라에 비지배주주가 권리를 행사해 기업의 저평가를 해소할 수단이 없음을 방증합니다.


둘째. 경영승계 과정의 문제입니다. BYC는 창업자인 故 한영대 회장의 차남인 한석범 사장(2세)을 거쳐 3세인 한승우 상무로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진행중에 있습니다. 오너 3세 한승우 상무의 BYC 지분율은 올 6월말 기준 3.65%에 불과하지만 한 상무가 BYC의 1대 주주, 2대 주주인 신한에디피스, 한승홀딩스를 지배하고 있어 이들 법인이 보유한 BYC의 지분율을 감안하면 실질 지분율이 32%를 넘어 사실상 경영권 승계 작업이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BYC 지배주주 일가도, 우리나라의 수많은 재벌 상속 사례에서 보듯이 정상적으로 상속증여세를 내고 지분을 증여 혹은 상속받기 보다는 비상장 관계사를 통해 BYC의 지분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지배력을 강화해왔습니다. 


셋째. 지배주주 일가가 보유한 (사실상) 개인기업들과의 광범위한 내부 거래의 문제입니다. BYC의 지배주주 일가는 신한에디피스, 제원기업 등 10여개에 가까운 비상장 기업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들 회사 지분 대부분이 지배주주 일가 소유로 개인회사와 다름이 없는 회사들이며, 이들 대부분이 BYC와 혹은 같은 계열사들끼리 광범위한 내부 거래를 하고 있습니다.


트러스톤과 소액주주들은 BYC 지배주주 일가가 이들 비상장 계열회사에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를 하고 있다고 비난해 왔습니다. 일감 몰아주기의 대표적 사례로 지적받고 있는 제원기업의 경우, 한석범 회장의 장녀 한지원 이사가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으며 BYC의 건물 관리 용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제원기업의 2021년 매출 128억원중 절반 인상인 56억원이 BYC 계열회사와의 내부거래에서 올린 매출입니다.


지배주주 사익 편취나 일감 몰아주기 같은 거버넌스 문제를 이야기하면 흔히 재벌(대기업)을 떠올리기 쉬우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중견기업, 중소기업의 거버넌스가 훨씬 더 열악한 실정입니다. 


우선 일명 사익편취 금지법으로도 불리우는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 제공 금지 규정이 자산규모 5조원 이상 대기업에만 해당하기 때문에 중소.중견기업에는 이를 규제하는 법이 아예 없습니다. 부당 내부거래 혹은 불공정 거래 금지는 관리 감독 책임을 맡은 공정거래위원회의 행정력의 한계 때문에 이들 중소 중견기업까지는 제대로 관리 감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처럼 규제하는 법이 없거나, 행정력이 미처 미치지 못하는 그늘에서 일부 지배주주가 일반주주를 수탈하고 우리 자본시장을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규제만으로 모든 문제를 풀 순 없을 것이나, 기울어진 운동장이 바로 잡혀 시장이 스스로 질서를 잡을 수 있을 때 까지는 관리감독 책임을 맡은 정부 당국이 이들 그늘진 곳을 좀 더 적극적으로 들여다보고 살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행동주의 펀드를 비롯해 각성한 일반 투자자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2022.12.21

사단법인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 김규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