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논평] 국민연금 및 국내 자산운용사, 의결권 적극적으로 행사하고 행사내역 상세히 공시하도록 해야



“성실한 의결권 행사는 기관투자자 수탁자 책임의 기본,


일본 등 해외와 같이 의결권 행사의 근거와 상세내역을 충실히 공시해야”




15일 법무부는 메이슨캐피탈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국제투자분쟁(ISDS) 판정문  300여페이지 전문(국문 및 영문)을 공개했다. 판정문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과정에 개입하여 합병에 찬성하게 함으로써 합병이 승인됐다. 이러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과정에서의 절차적 하자로 인해 메이슨캐피탈과 엘리엇 등이 제기한 국제소송에서 한국 정부가 연이어 패소하며 수 천억 원의 혈세를 낭비하게 됐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자금과 직결되는 중대한 대규모 합병에 찬성하면서 구체적인 의결권 행사 사유 및 근거를 공개하지 않았다. 올해 주주총회에서도 국민연금은 정부가 대주주인 기업은행이 KT&G를 상대로 주주제안을 한 안건과 이사회와 주주가 합의를 이룬 태광산업, 캐스팅보트를 쥐지 않은 DB하이텍 일부 안건 등을 제외하면, 삼성물산, JB금융지주, 금호석유, 한미사이언스의 주주제안 안건을 모조리 반대하였다. 공개된 반대 사유는 이를테면 이사회 안이 장기적인 주주가치에 더 부합한다고 판단하였다는 짤막한 한 줄 뿐이다. 어떤 근거로 왜 이사회 안이 주주제안보다 장기적인 주주가치에 더 부합한다고 판단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국내 자산운용사들의 의결권 행사 내역도 깜깜이다. 상당수의 자산운용사들이 자체적인 의결권 행사 기준에 못 미친다는 이유(펀드 내 보유비중이 작다는 이유 등)로 의결권 행사를 포기한다. 이사회안과 주주제안이 맞붙는 분쟁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는 수탁자로서의 의무를 방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더구나 의결권 행사 공시조차 공시 의무가 있는 소수의 회사만을 상대로 하고 있는 현실이다.


국민연금과 자산운용사는 국민과 고객들의 자산을 대신해서 운용하는 수탁자로서,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함에 있어서도 고객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이 당연한 책무다. 특히 이사회안과 주주제안이 첨예하게 맞붙는 상황에서는 더욱 주의 깊게 수탁자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포럼이 포럼 회원사와 함께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의결권 행사내역을 공시한 주식운용 금액 기준 상위 10개 자산운용사들의 주주제안 찬성률은 해가 갈수록 줄고 있다. 2022년에는 주주제안 찬성률이 60%에 달했는데, 2023년에는 32%, 2024년에는 23%로 급감하고 있다. 특히 일부 주요 운용사들의 2024년 주총 주주제안 찬성률은 0%인 경우도 있을 정도로 극히 낮다 (별첨1). 반면, 이들 운용사들의 주주제안 안건 반대 및 불행사의 비율은 크게 늘고 있다. 대상을 전체 운용사로 넓혀도 수치는 비슷하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안건 찬성과 반대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와 사유를 공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처럼 짤막한 한 줄 정도가 대부분이다. 특히 이사회안과 주주제안이 맞붙는 위임장 대결 상황은 일년에 몇 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의결권 행사 사유가 불분명하고 부족하다. 대형 자산운용사들이 인력이 부족해서 몇 건 되지 않는 주주제안 안건에 대한 의결권 행사 상세 근거를 공시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는 수탁자로서 응당 가져야 하는 책임감 부족으로 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반면 해외는 어떠한가? 최근 한국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일본의 사례를 살펴보자. 약 2,000조 원을 운용하는 세계 최대 연기금인 일본 공적연금(GPIF)은 위탁운용사들이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고 상세 내역을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GPIF는 위탁운용사들이 따라야 하는 의결권 행사 지침을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는데, 주요 내용으로는 소수주주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주주제안 안건을 충실하게 분석하라는 점, 기업거버넌스코드와 국제기준에 맞춰 의결권을 행사하라는 점, 의결권자문사의 권고를 무조건적으로 따르지 말라는 점, 의결권 행사 이유를 설명하라는 점 등이 있다.


특히 2020년에는 comply or explain에서 comply and explain으로 스튜어드십 정책을 바꿔서 운용사들의 활동과 판단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운용사들의 의결권 행사를 포함한 주주관여 활동을 평가하여 위탁운용사 선정 과정에 반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 자산운용사들은 의결권을 성실히 행사하고 있으며, 상세 내역을 공시하고 있다. GPIF가 발간한 통계(2022년 4월~2023년 3월)에 따르면, 일본 국내주식 대상 주주제안 안건 중 외부감사 선임의 건에 대한 자산운용사의 찬성률이 43%에 달한다. 특히 이사회안에는 대부분 찬성하는 한국과는 달리, 이사의 퇴직금 관련 이사회 안건에 대해서는 반대율이 무려 87%에 달한다. 범위를 해외주식으로 넓히면, 감사 선임 주주제안 찬성률은 무려 80%에 달하며, 자사주 매입 안건에 대한 찬성률도 50%에 달한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 운용사들이 홈페이지를 통해 의결권 행사 내역을 상세히 공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GPIF 위탁운용사 Asset Management One은 홈페이지를 통해 3개월간의 의결권 행사내역을 공시했는데, 그 파일이 무려 228페이지에 달한다. 투자하고 있는 거의 모든 기업의 안건에 대해 의결권을 성실히 행사하고 그 내역과 근거를 공시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최근 기업거버넌스 개혁을 위해 밸류업 정책 등 여러 주주친화적인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것은 매우 긍정적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기본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가 선거에서 국민의 참여, 즉 투표율을 중요하게 생각하듯이 기업의 밸류업을 위해서는 주주들의 관심과 참여가 가장 기본이며, 이는 수천만, 수백만 국민의 자금을 운용하고 있는 국민연금과 자산운용사들이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깜깜이, 무논리, 무근거 의결권 행사로 국민의 소중한 자산이 녹아 없어지지 않도록, 국민연금과 자산운용사들이 성실하게 의결권을 행사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행사 근거를 충실히 공시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펀드 내 비중이 얼마 되지 않아도 주주가치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합하는 안건은 의결권을 의무적으로 행사하게 한다든지 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고, 이러한 의결권 행사 내역에 대한 상세 근거를 행사 즉시 공시하는 방안, 그리고 자산운용사 뿐 아니라 기업들도 주주의 표결 내역을 종합하여 공시함으로써 투자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방법 등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기관투자자들이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그리고 사려 깊게 행사하는 환경이 조성될 때 진정한 밸류업이 가능할 것이다.




2024. 5. 20.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 이남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