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논평] 상속세 감세 논의는 반드시 주주보호 제도와 동시에 추진되어야 합니다.



최근 우리 정부는 상속세 최고세율 50%(대주주 할증하면 60%)가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편이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제기를 하였고(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관련 질의에 대한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 답변), 서정진 회장 등 일부 기업인들도 경영권 가업승계가 불가능하니 최고세율 특히 대주주 할증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동의한 바 있습니다.


우리 포럼은 창립 이후 세미나, 컨퍼런스 등에서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세율(특히 대주주 할증)은 OECD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고 재검토되어야 하지만 반드시 주주 보호 방안과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제안한 바 있습니다. 다시 한번 분명히 우리나라의 기업거버넌스, 상속세율, 경영승계 등의 왜곡된 구조에 관하여 정리하고자 합니다.


주지하다시피 위와 같은 우리나라의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 최고세율, 특히 대주주 할증은 소위 경영권 프리미엄에 대한 과세입니다. 따라서 경영권 프리미엄에 대한 과세가 사라지려면 경영권 프리미엄이 먼저 사라져야 합니다.


경영권이란 이사회가 임기 동안 회사의 자본, 자산을 활용하여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주주가 이사회에 부여한 권한으로서, 주주 전체를 위하여 사용해야 하고 반드시 임기가 있어서 주기적으로 경영성과에 대한 검증을 받고 주주의 신임을 얻어야 하므로 지배주주의 사적 재산권이 될 수 없으며 세습도 불가능하고 매매도 불가능합니다. 만일 창업주 가문 혹은 지배주주가 자신의 후손에게 경영승계를 원한다면, 경영능력을 입증하고 전체 주주의 동의를 얻어 이사회에 참여해야 합니다. 따라서 경영권의 사적 소유나 매매를 전제로 하는 프리미엄이나 그에 대한 과세도 불가능합니다. 이것이 공정한 기업거버넌스 작동원리이며, 글로벌 스탠다드입니다. 자본시장이 발달한 영미나 유럽에서는 경영권 프리미엄이란 관념 자체가 없고 지배주식만을 유통주식에 비해서 높은 가격으로 매매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경영권을 주주 전체가 아니라 지배주주만을 위해서 남용할 수 있다는 관념 자체가 불법입니다. 세상에 어떤 나라에서 그런 불법을 허용한다는 말입니까.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사실은, 공정한 기업거버넌스 원리가 작동하고 경영권 프리미엄이 사라지기 위해서는, 주주가 무능하거나 불법적인 이사들에게 경영 책임 및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특히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가 보장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주주보호제도와 경영권 프리미엄은 동전의 양면, 빛과 그림자 같은 관계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OECD국가의 주주 보호 제도(예컨대,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의무공개매수제도, 합병비율 조작 금지, 자사주 마법 혹은 경영권 방어 목적 처분 금지, 모자회사 동시상장 금지, 증권집단소송 즉시항고 폐지, 증거개시제도 등)가 없기 때문에 지배주주가 이사회를 무력화하고 경영권을 남용하여 사익편취를 하거나 높은 프리미엄을 받고 경영권을 매매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최근에도 시가의 몇배 되는 프리미엄을 얹어서 경영권을 매각하거나(YTN), 모자회사 동시상장(두산로보틱스, 에코프로머티리얼즈) 및 경영권 분쟁 중에 자사주를 우호세력에게 매각하는 시도 등 기업거버넌스 파괴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참고로 대만은 2008년 상속세 최고세율을 50%에서 10%로 인하(현재는 20%)하면서 거의 동시에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증권선물투자자보호센터 설립 등 강력한 주주보호제도를 동시에 도입했습니다. 일본은 상속세 최고세율이 여전히 50%이지만 2012년 아베 총리의 자본시장 개혁을 시작했고 2015년에 도쿄거래소의 일본기업거버넌스코드에 영미법 상의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전면적으로 도입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 혹은 유산취득세로 전환 등을 검토한다면 반드시 주주 보호 제도도 동시에 도입되어야 합니다. 만일 주주 보호 제도의 도입 없이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를 시도한다면 재벌과 부자들에게만 막대한 특혜를 준다는 국민들의 거대한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상속세제와 기업거버넌스를 동시에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개혁하여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지배주주, 일반주주, 임직원, 시민들이 모두 상생공영하는 나라를 만들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2023. 11. 13.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 김규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