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논평] 복수의결권 도입을 위한 벤처기업법 개정안에 대한 논평


최근 일부 미디어에서 복수의결권을 도입하는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이하 “본법”) 개정안(이하 “본법안”)의 국회 본회의 상정이 임박하였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우리 국회 관행상 소위에서 만장일치가 되어야 본회의 상정을 하기 때문에 본회의 상정은 사실상 법안 의결과 같이 간주되고 있는바, 이하에서 살펴 보듯 주주평등의 원칙이 입법된 상법 개정 없이 복수의결권 도입은 부당하며 복수의결권을 도입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에도 맞지 않으므로 본법안은 즉시 폐기되어야 합니다. 


우선, 주식 상장 전에는 경영권이나 헤게모니에 대한 내용을 주주간 계약에 반영하면 됩니다. 쿠팡, 마켓컬리, 배달의 민족 등 비상장 유니콘 기업들은 대규모 투자를 받았지만, 주주간 계약을 통해 경영권을 보호받았습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대부분의 벤처들이 투자 받을 때 주주간 계약을 통해 지분과 경영권에 대한 협상을 하므로 복수의결권이 불필요합니다. 미국에서도 복수의결권을 도입한 거의 대부분의 유니콘이 비상장 시기가 아니라 상장 직전에 도입합니다. 즉, 복수의결권이 유니콘을 탄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유니콘이 된 후 상장을 할 때 도입하며, 유니콘 육성을 위해서 복수의결권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주주평등의 원칙이 상법에 규정되지 않은 미국에서도 뉴욕거래소는 복수의결권을 허용하지 않다가 2004년 구글의 압박에 허용해 주었으나, 이때 내세운 골든 터치 효과(창업가의 창조적인 기업가 정신은 드물기 때문에 경영권 보호는 기업 가치와 경제에 도움된다는 논리)는 기대보다 적고 부정적인 효과는 커져 오히려 기업가치 떨어진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최근 미국에서도 복수의결권의 일몰조항, 추가적인 기업 거버넌스 규제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뉴욕에서 복수의결권 도입하면서, 경쟁관계였던 런던, 싱가포르, 홍콩 등에서 복수의결권 기업 상장을 허용하였으나, 실제 사례가 거의 없습니다. 전세계에서 압도적으로 투자자 보호가 강한 미국 증시에서라면 도입논의가 가능하겠으나, 투자자 보호 법제도가 글로벌 스탠다드에 턱 없이 부족한 우리 현실에서 복수의결권 도입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주주평등의 원칙(1주 1표)과 복수의결권은 모순관계입니다. 국가마다 주주평등의 원칙 입법례가 다른데, 만약 임의규정이거나 규정이 없으면 복수의결권 도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법적으로 주주평등의 원칙(1주 1표)이 강행규정으로 도입된 나라들 중 복수의결권이 도입된 경우는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상법 제369조 제1항(의결권은 1주마다 1개로 한다)에서 주주평등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고 우리 대법원은 이를 강행규정으로 해석하고  있으므로, 복수의결권은 주주평등의 원칙에 중대한 예외가 되고, 1주 1표 규정이 없는 나라보다 훨씬 강한 정당성이 필요합니다. 상법을 개정하는 수준의 합의가 선결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정을 모를리 없는데 본법안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이유는, 법안이 통과되면 상장 사례가 나올 것이고, 일몰 조항을 두고 있지만 3년의 시간이 지나면 소유-지배 구조의 급격한 변동 발생하게 되면서 일몰 연장 혹은 일몰 조항 삭제 등의 여론 몰이를 통해 결국 대기업들까지 복수의결권 발행을 허용하여 경영세습을 획책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됩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소유와 지배의 괴리는 이미 심각한 상황입니다. 공정위 자료에 따르면, 대기업집단 총수 일가의 지분율은 평균 약 3.7%, 의결권은 약 59.9% 행사 중이며, 자기자본의 16배가 넘는 의결권을 이미 행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소유와 지배의 괴리를 확대하는 복수의결권까지 발행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만일 본법안이 기업의 경영승계를 위해서라면, 충분한 시간동안 우리 사회에 적합한 경영승계 구조는 어떤 것인지 영미, 북유럽, 독일, 프랑스 등 외국 사례를 통해서 충분히 연구,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며, 그에 따라 상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이런 식의 편법 추진은 당장 중단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본법안이 강행된다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가 아닌 확대로 자본시장을 후퇴시키는 악법이 될 것임을 지적하며, 본법안의 즉시 폐기를 요구하는 바입니다.



2023. 04. 25.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 김규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