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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논평] 밸류업에 얼음물 끼얹는 두산, 그리고 그걸 방관하는 자본시장법 (2024-07-12)

2024-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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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업에 얼음물 끼얹는 두산, 그리고 그걸 방관하는 자본시장법


 

- 자본시장법의 상장회사 합병비율 조항을 최대로 악용한 사례가 나왔다.


- 매출 규모가 183배 차이나는 두 계열회사 주식을 1:1(금액기준)로 교환할 수 있게 만드는 30년 묵은 자본시장법 시행령 도대체 언제 개정할 건가?


- 1주일이 멀다하고 벌어지는 새로운 방법들 하나하나 막을 수 없다. 전체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원칙 도입하지 않으면 계속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슬프다. 어찌 백주대낮에 또 이런 일이 발생하나?


어제 (7월 11일), 두산그룹의 지주회사인 (주)두산을 비롯해 두산에너빌리티, 두산로 보틱스, 두산밥캣 4개 회사가 일제히 대단히 복잡한 일련의 자본거래 공시를 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두산그룹의 승부수, 시너지를 알리는 기사가 인터넷을 도배했다.


하지만 모두 지배주주의 관점이다.


알짜인 두산밥캣을 떼어내는 두산에너빌리티의 70% 일반주주들도 당황스럽겠지만, 조금 더 쉬운 쪽을 생각해보자. 연 매출이 10조 원에 육박하고 영업이익이 1조 3천억 넘는 상장회사 두산밥캣의 과반수인 54% 일반주주들은 어떤 상황에 처하는 것인가?


매출 규모가 두산밥캣의 183분의 1인 530억 원에 불과하고 무려 192억 원의 영업손실을 낸 두산로보틱스와 같은 기업가치로 주식을 바꿔야 하는 충격적인 상황이다.


작년 말 상장한 이 회사는 폭등과 폭락을 거듭하는 테마주 성격이 강하고, 작년 매출 대비 시가총액 (PSR)이 100배 (아직 이익이 나지 않아 PER 계산은 불가능)가 넘는 초고평가 상태로서 아직 시장에서 제대로 된 가치 평가를 받았다고 보기 어렵다.


그런데 두산밥캣 주주는 그게 싫으면 그냥 최근 주가로 현금을 받고 주식을 회사에 팔아야 한다. 좋은 회사인데 주가가 낮다고 생각해서, 결국 본질가치를 찾아갈 것이라고 믿고 오래 보유하려던 수많은 주식 투자자들이 로봇 테마주로 바꾸던지 현금 청산을 당하던지 양자 선택을 강요 받는 날벼락을 맞는 상황이 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나?


자본시장법이 상장회사의 합병에서는 예외 없이 기업가치를 시가로 정하도록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직전 한 달, 일 주일, 전날 주가의 가중평균이다. 누구나 엑셀 한 번만 돌리면 회사의 가치를 측정하는 모든 재무적 기법을 제치고 상장회사의 기업가치를 계산할 수 있는 전세계에서 가장 쉽고 강력한 방법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오로지 한국에만 있다.


작년 (2023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 결과에 잘 나타나 있듯이, 미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상장회사라고 해서 주식시장의 시가만으로 합병에 필요한 기업가치를 산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가와 30% 이상 차이나는 경우가 다수다.


그런데 최근 우리 금융위원회는 이런 상장회사 합병비율 산정 방식에 문제가 있어 제도를 개선한다고 하면서 비계열회사간 합병에만 적용하고, 오히려 계열회사간 합병에서는 시가를 강제하는 현행 방식을 유지한다고 하였다.


우리나라 합병의 99%는 계열회사간 합병이고, 이 때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같은 지배 주주가 사실상의 의사결정을 하는 계열회사 사이에서 지배주주에게 가장 유리한 시기와 시가를 기준으로 합병 또는 주식교환이 이루어지면서 그 과정에서 일반주주들은 회사 성장에 따른 수익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일이 반복되어 온 역사인데 말이다.


이게 바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민낯이다.


진정한 밸류업은 바로 이런 거래를 근본적으로 막아야 비로소 가능하다.


실제 행동을 해서 모두가 기대하는 밸류업 기조에 얼음물을 끼얹은 것은 두산이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을 넘어서 오히려 이런 일을 누구도 저지할 수 없도록 손발을 묶고 있는 것은 우리의 법과 제도, 자본시장법과 그 시행령이다.


게다가 주주에 대한 일반적인 충실의무, 보호의무도 없으니, 두산밥캣의 이사가 아무리 이 상황이 상식적으로 부당하다고 생각해도 “이런 가격과 시기에 엄청난 고평가 테마주인 로보틱스 주식과 교환하는 것은 안된다”고 말할 법적 근거가 전혀 없다.


이렇게 1주일이 멀다하고 지배주주에게 유리한 새로운 기법이 나오는 한국의 자본시 장에서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보호의무와 같은 일반 원칙이 없으면 항상 법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기 밖에 할 수 없다.


저평가 우량회사에 투자한 54%의 일반주주에게 매출 규모 1/183인 고평가 테마주와의 주식교환이라는 얼음물을 끼얹은 두산의 지배주주, 이것을 방관하고 오히려 촉진시키는 자본시장법과 시행령, 둘 중에 누가 더 책임이 있나?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하에서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미국과 일본 시장을 쳐다만 보고 있는 국민들과 암울한 한국 자본시장의 미래에 대한 책임 말이다.





2024. 7. 12.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 이남우, 부회장 천준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