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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중 변호사] 기업가치 평가 감독 제도의 필요성

운영진
2021-03-11
조회수 580


회계사 제도는 기업의 재무정보에 대한 신뢰성을 부여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그 업무영역이 확대되어 기업가치 평가도 중요한 업무가 되었다. 자본시장이 커지고 고도화되면서 기업가치 평가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이를 대부분 회계사들에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가치 평가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지만 그에 대한 감독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지난 1월 검찰은 안진회계법인의 회계사들을 공인회계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교보생명 재무적투자자의 풋옵션 공정시장가치 산출 과정에서 행사가격을 높이기 위해 평가기준일을 유리하게 정했다는 혐의다. 지난해 11월에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관련하여 회계사들이 기소되었다. 이들은 삼성물산 허위 합병 명분과 이를 뒷받침할 시너지 수치를 만들어내 달라는 삼성 측의 요구에 따라 합병 비율이 적정하다는 허위보고서를 작성한 혐의다. 법원의 최종 판단을 보아야겠지만 회계법인들의 기업가치 평가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점이 검찰 수사 결과 확인된 셈이다.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그 가치를 왜곡하여 인위적으로 낮추거나 높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평가 전 해에 회사 실적이 좋지 않았을 경우, 그 가치를 낮추고 싶으면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의 방법을 적용하여 과거 손익을 토대로 평가하면 된다. 반대로 가치를 높이고 싶으면 현금흐름할인법 등 미래 수익가치를 측정하는 방법을 적용하고, 긍정적으로 추정을 하면 된다. 회계사가 성실하게 평가를 하더라도, 기업은 회계사에게 제공하는 자료를 조율하는 방법으로도 가치 평가를 왜곡할 수 있다.


이렇게 왜곡된 기업가치 평가는 대주주나 경영진의 횡령·배임을 은폐하고, 투자자들에 대한 사기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문제는 현재의 제도 하에서는 이를 밝히고 바로잡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는 데에 있다. 교보생명 사례의 경우, 교보생명의 가치가 문제가 되었으므로 피해자라 할 수 있는 교보생명 측이 이를 밝힐 수 있었을 것이며,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경우 검찰이 그 수사력을 총동원하여 오랜 기간 대대적인 수사를 한 결과이므로 그러한 사례들을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보통의 경우는 왜곡된 가치로 거래를 한 경영진을 고발하더라도 검찰은 회계법인의 가치평가에 의하였다는 이유로 불기소하고, 법원 역시 회계법인의 가치평가를 근거로 이사들의 손을 들어준다.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이 있거나, 내부자가 아니고서는 가치평가의 왜곡 사실을 밝히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금흐름할인법으로 가치를 산정하면서 영구성장률을 2%로 높이는 방법으로 가치를 왜곡하였다면, 영구성장률 0%에 비해 그 평가금액의 차이는 크지만, 사법적으로는 2%는 틀리고, 0%는 맞는다고 입증하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가치평가의 문제는 최근 들어 나타난 것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문제가 지적되어 왔으며, 가치평가를 담당하는 회계사들에게서조차 기업이 요구한 내용에 도장만 찍어주는 도장 장사꾼으로 전락했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온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에 대한 감독이나 통제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2008년에도 부실 외부평가에 대한 제재기준을 마련하고 감독 강화를 하겠다고 나섰지만, 그와 관련된 규정은 여전히 자본시장법 제165조의 4뿐이다. 그마저도 외부평가기관의 평가가 현저히 부실한 경우 일정 기간 평가 업무를 제한하는 것에 그쳐 제재의 실효성이 없다. 게다가 위 규정은 주권상장법인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것이어서 비상장법인에 대해서는 아예 감독제도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결국 현재 기업가치 평가 일반에 관해서 적용될 수 있는 규정은 공인회계사법 제15조(공정 및 성실 의무)뿐이라고 할 수 있다. 회계사들의 양심에 기업가치 평가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모두 맡긴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게다가 교보생명 사례의 경우 검찰이 위 규정을 적용한 데 대해 가치평가 업무는 공인회계사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반론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물산·한국아트라스비엑스·삼광글라스 등 상장법인 합병에서 시가로 합병비율을 산정하는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나고 있는데도, 투자자들은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만나는 격이 될까 걱정되어 합병비율 산정 방법 변경을 주장하지 못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우리 자본시장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더 늦기 전에 기업가치 평가에 대한 감독제도를 제대로 마련할 필요성이 있다. 그럼 어떻게 감독을 할 것인지의 문제가 있지만, 다행히 주식회사외부감사법에 의한 분식회계, 부실감사 조사·감리 제도가 잘 작동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이를 원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회계감사기준과 그 준칙처럼 기업가치에 대한 외부평가의 뚜렷한 기준을 마련하고, 그 평가 과정과 근거가 되는 자료를 평가 조서의 형태로 작성하여 일정 기간 보관하도록 한다. 또, 금융감독원의 감리제도처럼 가치평가에 대해서도 정기·수시 검사를 하고, 허위 평가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을 하고, 허위·부실 평가로 인한 피해에 대해 평가자에게 민사 손해배상책임을 지우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제도의 도입에 대해서 공인회계사 단체가 반대할지 모른다. 그러나, 위와 같은 제도가 도입되면 오히려 대주주나 경영진의 부당한 요구를 거부할 방어막이 되고, 가치평가 업무에 대해 적정한 보수를 받을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자본시장이 공정하게 기능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기업가치 평가의 문제를 방치해서는 안 되며, 이를 제대로 감독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여야 한다.


(아주경제 안준호 기자)


기사 링크 https://www.ajunews.com/view/20210309141424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