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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재의 ESG 인사이트] 기업은 권리와 의무의 두 바퀴로 굴러 간다

사무국
2023-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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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의 글로벌 대기업 임원 한 분을 만났다. 엔지니어 출신이었다. 그분은 대화 도중 목소리 톤을 높이며 내게 물었다. ‘주주자본주의’가 무엇이냐고. 나는 ‘기업의 주인(principal)을 주주로 놓는 것’이라고 간단히 답했다. 그랬더니 그분은 더욱 톤을 높이며 되물었다.


“저는 1990년 입사해 지난 33년간 주인의식 하나로 일해 왔습니다. 가족이며 친구, 취미, 건강 등은 다 뒷전이었지요. 일하다 순직할 수 있다면 내 인생 성공한 것이라고 믿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회사 주식 한 장 없다고 주인이 아니라고요?”


이분의 질문은 맥락에 따라 반은 틀리고 반은 맞다. 우선 법적 관점에서는 틀리다. 회사법은 주주를 최종 책임의 주체로 놓는다. 잔여재산의 최후 청구권자이기 때문이다. 회사 청산 시 근로자에게 임금을, 채권자에게 원리금을, 협력업체에게 납품대금 등을 우선적으로 지불하고 남은 자산을 주주에게 지급한다. 따라서 주주는 여러 이해관계자 중 최후순위의 최대 위험 부담자라는 주장이다.


오류의 근거를 노동법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근로자는 사용자와 근로계약을 맺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 따라서 회사와 근로자는 쌍무적 계약관계일 뿐, 근로자가 회사의 주인은 아니다.


반면 근로자도 주주와 대등한 기업의 핵심적 이해관계자라는 주장도 있다. ‘자본과 노동’은 기업 구성의 필수요소인 까닭이다. 어느 하나만으로 기업은 실질적으로 존립할 수도 운영될 수도 없다. 한편 근로자의 고용과 임금 역시 확정적 권리인 듯 보이지만 실상은 회사 경영 상황에 따라 연동되는 불확실한 권리라는 주장도 있다. 근로자도 주주 못지않은 불확실한 위험을 떠안은 이해관계자라는 의미다.


그러나 주주의 최후 청구권이건 근로자의 불확실한 권리건 둘 다 ‘권리’ 측면에서만 주인 여부의 판단에 접근한다. 하지만 권리는 의무와 동전의 양면인 까닭에 ‘의무’의 관점에서도 이 문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려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의무도 책임도 함께 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 원칙은 주주인 투자자에게도 책무를 묻고 있다. ‘장기 투자’가 그것이다. 장기 투자는 각종 테크놀로지 고도화에 따른 자본시장의 ‘단기 트레이딩’ 폐해를 보정하기 위해서다. 즉 투자자가 최후 청구권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려면 투자 대상 기업과 장기간 동행 투자하며 모니터링하고 관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래야 주인답다는 얘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이런 움직임을 더욱 촉발했다. ‘단기 투기’도 금융위기의 한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클린턴 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냈던 래리 서머스는 현대 자본시장의 트레이딩 행태를 ‘케첩 경제학(Ketchup Economics)’이라고 비판했다. 자본시장 투자자가 케첩의 기본적 가치에는 무관심하고 단기 차익 극대화에만 골몰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투자자의 책무는 실종될 수밖에 없다. 예컨대 투자 대상에 대한 탐색(Search), 분석, 관여 등은 도외시하고 2쿼트병의 케첩 가격이 1쿼트의 그것보다 두 배일 경우 케첩 시장은 효율적이라는 기계적 판단을 내린다. 케첩 가격을 구성하는 토마토 가격 추세, 그 생산 과정에 투입되는 인건비 등 각종 비용, 대체재 가격 추이 및 수요 변화 등 실물 시장에 대한 면밀한 분석은 뒷전이다. 비용 대비 단기 편익이 작다는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2010년 등장한 스튜어드십 코드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속히 퍼진 ESG 투자는 주주인 투자자에게 주주 권리에 상응하는 주주 의무를 동시에 묻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근로자의 권리와 대칭된 근로자의 책무는 무엇일까. 2010년 국제표준화기구(ISO)에서 공식 발표했던 사회책임의 국제 표준인 ‘ISO26000’에서 단서를 찾아보자. ISO26000에서는 기업의 사회 책임을 기업만이 아닌 근로자에게도 묻고 있다. 그들은 투명성, 책임성, 윤리적 행동, 이해관계자의 이익 존중, 법규 준수, 국제 규범 존중 그리고 인권 존중 등 7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따라서 노동조합도 노동 3권을 주장하기 이전에 이 7가지 원칙의 잣대로 스스로의 책임과 의무를 성찰해야 한다. 가장 먼저 투명해야 한다. 특히 노조의 회계장부도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조합원을 위시한 내·외부 이해관계자들이 그것을 언제든 열람할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 투명해야 상대에게도 투명성을 요구할 수 있다. 무엇보다 투명성이란 ‘빛’은 부패를 예방하는 가장 효율적 기제이다.


근로자도 윤리적이며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 근로자가 노동의 가치를 존중받으려면 먼저 스스로 그 가치를 존중하며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할 것이다. 불법적 시위나 집회는 안 된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나의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에게 손해를 끼쳐서도 안 된다. 나의 인권만큼 타자의 인권도 소중한 것이다.


서구에서는 18세기 산업혁명 이전 16세기부터 종교개혁을 거치며 노동에 대한 신앙적 성찰이 있었다. 마틴 루터는 크리스천에게 직업은 소명이고, 노동을 통해 이웃에 대한 사랑을 완성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가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주장했다. 장 칼뱅 역시 어떠한 직업에 종사하든지 양심에 따라 정직하고 근면하며 최선을 다해 일하는 것이 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말했다.


20세기 초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미국을 성장시킨 5가지 직업관에 대해 적었다. 첫째, 일하는 것은 그 자체로 가치있는 일이다. 둘째, 정직하고 근면한 노동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다. 셋째, 시간을 낭비하는 행위는 경멸하고 계획을 세워 실천해야 한다. 넷째, 일하기 위해 쾌락, 행복, 즐거움 등을 포기하고 휴식과 게으름을 물리친다. 다섯째, 절약하고 검소한 생활을 한다. 어찌 보면 서구 사회가 지난 20세기를 주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직업 규범이 깔려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주식회사의 역사는 서구보다 매우 짧다. 그만큼 기업 윤리와 직업 규범에 대한 철학적 고찰의 토대도 얕고 기간도 짧았다. 기관 투자가 주주조차 ‘수탁자 책무(fiduciary duty)’에는 무관심하고 주주 권리에만 편의적 주장을 한다. 그뿐이랴. 근로자도 권리를 앞세우고 책무를 그 뒤에 꼭꼭 숨긴다. 그렇게 ‘자본과 노동’이 권리만 강조하면 기업이란 결사체는 상호 이해관계의 충돌 속에 무한경쟁의 파도를 넘지 못할 것이다.


그나마 지난 반세기 동안에는 모두(冒頭)의 산업 전사들이 있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가정과 건강을 뒤로하고 직장에 올인했던 해방세대와 베이비부머가 그들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것을 기대하긴 어렵다. 따라서 일터와 자본시장에서 민주적 원리인 권리와 책무의 균형을 회복하는 데서부터 새롭게 풀어야 할 것이다. 기업은 권리와 의무의 두 바퀴로 굴러간다.


서스틴베스트 대표


이상재(lee.sangjai@joongang.co.kr)


[기사 원문 보기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6458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