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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재 대표] 탄소중립과 한강의 기적 시즌II | 중앙일보 - 류영재의 ESG인사이트

운영진
2022-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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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향후 15년 동안 약 90조 달러의 신규 투자가 필요하다.” 작년 8월 세계경제포럼의 ‘탄소중립 기금 조성을 위한 아홉 가지 스텝’에서 나온 주장이다. 올해 1월 맥킨지 역시 ‘탄소중립 달성 비용'이란 보고서에서 한술 더 뜨며 화답했다. “2050 탄소중립을 위해 약 275조 달러의 투자가 요구된다. 이는 연 평균 9.2조 달러에 해당한다.” 작년 우리나라 GDP 1.6조 달러의 5.7배에 달하는 가히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프로젝트이자 신시장이 들어서는 것일까.

여기서 잠깐 ‘탄소중립'의 개념을 짚고 가자. 탄소중립이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를 막기 위해 인간 활동에 의한 배출량은 줄이고, 그 흡수량은 늘려 결과적으로 순 배출량이 +/- ‘제로(0)’가 된 상태를 말한다. 2019년 전 세계가 약 590억 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했으니 이제 2050년까지 그 배출량을 최대한 줄이고, 습지, 숲 복원을 통한 흡수나 ‘탄소 포집, 활용, 저장(CCUS)’ 등의 기술발전을 통해 배출량을 제로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다. 590억 톤을 ‘제로(0)’로 전환시키려는 실로 야심찬 대과업이 아닐 수 없다.

앞서의 시장은 크게 세 갈래로 형성될 것이다. 우선 전통적인 화석연료 기반의 에너지로부터 신재생에너지로의 대전환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시장이다. 여기서는 태양광, 풍력 관련 섹터들의 빠르고 큰 성장이 예상된다. 둘째 앞서 언급했던 CCUS 실용화를 위한 혁신 주도형 시장이다. 탄소 출처의 식별, 탄소 포집, 정제 및 압축, 수송, 저장 및 격리, 활용 및 판매라는 영역에서 거대 시장이 들어선다. 여기서는 관련 테크놀로지 혁신의 정도가 그 승패를 가른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생활 및 소비 패턴 변화와 관련된 시장이다. 고효율 가전제품, 조명, 포장, 모빌리티 및 주거 등의 부문에서 새로운 기회의 장이 펼쳐진다.

새로운 시장에는 늘 승자와 패자의 희비쌍곡선이 그려진다. 미래의 변화를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측에는 승리가, 뒤 늦게 대처하는 측에는 패배가 기록된다. 이것이 인류 경제발전의 냉혹한 공리(公理)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선제 대응을 못해 실패할까. 경영학 구루인 하버드경영대학원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Clayton Christen) 교수는 “왜 한 때 크게 성공했던 기업이 실패할까?”라는 물음에서 그 유명한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론을 정립했다. 그에 따르면, 성공한 기업은 이미 형성된 고수익 시장에 몰두하는 나머지 저수익 잠재 시장의 부상을 등한시하기에 결국 실패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공한 기업일수록 신시장 관련 기반 기술과 사업 모델에 주목하면서 끊임없이 현재를 혁신해야 한다.

그럼 국가는 어떠할까. 국가 역시도 한 때의 큰 성공이 변화와 혁신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성공의 경험을 통해 대내외적 찬사를 받으면 자긍심이 자만심으로 변질되면서 부지불식간 과거 성공으로 인도했었던 ‘경로 의존성’이 강화된다. 결과적으로 과거 문법과 다른 의견이나 비판을 배타시하는 ‘집단사고(Group Think)의 함정’에 빠진다. 한편 성공과정에서 형성된 기득권층의 지대추구(Rent Seeking)도 한 몫 한다. 배타성이 강화되고 포용성은 약화된다. 이미 성공 가도를 달리는 산업에는 국가적 지원이 강화되지만, 잠재적 신산업과 신기술은 후순위로 밀린다. 혁신과 변화의 적(敵)은 ‘과거 성공’이란 등식이 성립할 수 있다.

이제 우리나라로 와보자. 우리는 지난 반세기 이상 성공한 국가의 대명사였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수사가 그것을 웅변한다. 그러나 한강의 기적을 이끈 산업들은 ‘탄소중립’이 아닌, ‘탄소중심’ 산업들이었다.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중공업, 조선, 반도체, 내연기관차 등이 그것들이다. 여전히 탄소중심 산업들은 우리나라의 현재진행형 핵심 산업들이다. 유럽국가들은 1990년 이전에, 미국은 2000년 초반에, 일본은 2013년에 온실가스 최대 배출량을 기록한 반면 우리나라의 배출 정점은 2018년이란 사실이 그 방증이다. 우리의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은 주요국 중에서 미국 다음으로 높으며, GDP 당 온실가스 배출량은 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다.

독수리는 40년을 살고 나서 중대 결정을 내린다. 기존의 부리가 가슴 쪽으로 굽어져 먹이를 제대로 먹지 못하기 때문이다. 독수리는 생명 연장을 위해 150일간 환골탈태의 시기를 보낸다. 즉 산꼭대기에 올라가 둥지를 틀고 자신의 낡은 부리를 바위에 으깨어 뽑아낸다. 고통의 순간이다. 이후 그 자리에 새로운 부리가 돋아나면 그 부리로 낡은 발톱도 뽑아낸다. 새 발톱이 돋아나면 깃털도 역시 뽑아낸다. 이후 새 깃털까지 돋아나면 완전히 새롭게 거듭난 모습으로 30~40년을 더 살아간다. 이제 한국경제도 독수리의 지혜를 배워 중대 결정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 ‘탄소 중심 경제’의 낡은 부리와 깃털을 뽑고 그 자리에 ‘탄소 중립 경제’의 새것들을 다시 돋게 하는 것이다. 그 부리와 발톱과 깃털로 모두(冒頭)의 275조 달러라는 천문학적 해외 신시장을 다시 날아다녀야 한다. 새로운 기회가 우리에게 오며 한강의 기적 시즌 II가 열릴 것이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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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링크: https://n.news.naver.com/article/025/0003200514